당신이라는 이름에게.
여보, 당신 자기라는 따스한 호칭보다 누구의 아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져 버린
세월이 벌써 30년이네요. 파릇파릇 젊었던 우리의 모습은 추억 속에 머물고,
어느새 당신의 머리에는 흰 눈이 쌓이고 얼굴에는 깊은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더군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깨달았습니다.
당신 정말 많이 힘들었겠구나...
오랜 시간 외길을 걸어온 당신의 삶을 헤아릴 때마다 제 마음은 늘 아리고 저립니다.
당신도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가끔 해봅니다. 어린 시절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깊은
상처들이 느껴져 제 마음이 그렇게 시릴 수가 없어요.
나와는 달리 당신은 반짝이는 재능으로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꿈꾸던 대학의 문턱을 넘고 싶어 했죠. 하지만 오직 가족을 위해 그 꿈을 접고,
스무 살 멋스러운 나이에 무역 회사에 뛰어들었어요.
한 직장에서 40년이 넘도록 무게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을 텐데, 나란 여자 만나 가정을 이루고 어린 자식들을 책임지기 위해
밤낮없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쳤으니.
무역 현장의 거친 바람 속에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책임감을 짊어졌을까요.
차가운 겨울엔 매서운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뜨거운 여름엔 땀띠와 검게 그을린 얼굴로 고생하며
가족을 지켰던 당신. 그 모든 무거운 짐을 혼자 감당하며 참으로 열심히 달려왔죠.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이들을 번듯하게 길러낸 당신을 보면,
그 숭고한 희생 앞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왜 이제야 당신의 굽어진 어깨를 제대로 보게 된 걸까요.
왜 진작 당신의 아픔을 알아봐 주지 못했을까요.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철없는 제 언행으로 당신의 마음을 평생 옭아매고 힘들게 했던 것 같아
후회스럽습니다.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어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비와 역경을 마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 곁에서 든든히 버텨주어 정말 고마워요.
당신을 만나 장애를 가진 당신의 동생을 간호하며 많이 울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는 모든 것이 서툴고 여린 젊음이었으니까요.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도
부족했던 대화가 잠시의 불화를 가졌던 거라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여보, 우리 지금처럼 편안한 친구처럼,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늙어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서로에게 완벽하게 융화될 수 있겠죠.
당신과의 지난 모든 추억, 그 빛바랜 기억들조차도 이제는 감사함으로 다가옵니다.
오늘도 밖에서 현장 근무를 하며 땀 흘리고 있을 당신에게, 당신을 생각하며 이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이제는 아등바등 애쓰기보다, 당신도 나도 조금씩
행복을 채워나가며, 편안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가요.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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